고리1호기 영구정지되지만, 해체계획서는 없다?!
2017년 6월 18일. 우리나라 최초의 핵발전소 고리1호기가 영구 정지된다.
그동안 정부는 폐쇄, 해체, 폐로 등 다양한 용어를 사용해왔으나, 이번 고리1호기에서는 ‘영구 정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말 그대로 지금까지 가동해오던 고리1호기가 영원히 정지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고리1호기가 해체되는 일은 올 6월 일어나지 않는다.
흔히 핵발전소의 해체는 핵반응로(=원자로)에 들어있는 사용후핵연료가 어느 정도 식은 다음 이뤄진다. 보통 5~7년 정도 걸리는 이 시간이 지나야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를 해체하는 과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결국 고리 1호기의 해체는 아직 몇 년 더 남은 미래의 일이다.
과연 그뿐일까? 해체를 위해서는 사업자가 구체적인 해체 방식과 절차, 핵폐기물 관리 계획 등이 담겨 있는 해체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 핵발전소를 새로 건설할 때 해체계획서도 함께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영구정지 5년 전에 이를 다시 점검하고 실제 영구정지가 이뤄진 때 이를 다시 점검해서 환경에 미칠 영향이나 안전 등을 심사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충분한 검증을 거치는 것은 물론이다.
핵발전소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많은 양의 핵폐기물이 발생하고 먼지와 같은 형태로 이것이 외부로 누출될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해체 절차를 상세히 정하고 이를 규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5년 법개정에 따라 기존 핵발전소에 대해서도 해체계획서를 작성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지만, 고리1호기뿐만 아니라 다른 핵발전소들의 경우도 해체 계획서는 아직 작성 중이다.
해체 비용은? 부지 복원은 어느 수준으로?
해체 계획을 둘러싼 논점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해체 비용이다. 그간 핵발전소의 해체 비용이 너무 작게 잡혀 있다는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현재 우리나라 핵발전소 1기의 해체비용은 6,347억원(경수로 기준)이다. 이 금액이 정확한지에 대한 논란도 있지만, 발전소 규모에 상관없이 모두 일률적으로 잡혀 있는 것 역시 문제이다. 고리1호기와 최근 준공한 신고리3호기는 핵발전소 설비용량이 3배 정도 차이가 나지만 모두 해체비용은 6,347억원으로 동일하다.
설비와 건물의 크기가 다르면, 발생하는 핵폐기물의 양이 다르기 때문에 해체비용이 핵발전소마다 모두 상이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이처럼 정밀한 해체비용 계산을 해 본 적이 없다. 고리1호기처럼 처음 해체를 하는 핵발전소의 경우, 당연히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역시 고려되어 본 적이 없다.
핵발전소 해체 비용은 자연스럽게 고리1호기 해체 이후 부지 활용문제로 이어질 것이다. 한수원은 핵발전소 해체 비용 중 약 41%를 핵폐기물 처리비용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경주 핵폐기장에 반입하는 중·저준위 핵폐기물의 반입 수수료는 200리터 한 드럼에 1천만원이 넘는다. 따라서 완벽한 제염을 통해 고리1호기 부지를 핵발전소 건설 이전상태로 되돌려놓을 것인가, 아니면 약간의 방사성 물질이 남아 있더라도 용인할 것인가는 앞으로 고리1호기 부지 복원 과정에서 큰 쟁점이 될 것이다. 현재 한수원은 고리1호기 부지를 대략 공장부지 수준으로 제염하겠다는 원칙을 밝히고 있다. 이 수준을 택지나 농지 수준으로 상향한다면 당연히 비용은 더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해체와 함께 건설될 신규 사용후핵연료 저장소
고리 1호기 해체의 숨은 쟁점은 사용후핵연료 문제이다. 현재 사용후핵연료는 발전소 내 수조에 보관하고 있는데, 이 수조 또한 결국 해체해야할 대상이다. 따라서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할 별도의 시설이 필요한데, 아직 우리나라에는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소나 최종 처분장이 없다.
이에 한수원은 사용후핵연료 건식 임시저장소를 고리핵발전소 부지 내에 짓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문제는 아직 우리나라는 경수로용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을 지어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중수로용 건식저장시설은 경주에 수차례 건설해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경수로와 중수로는 사용후핵연료의 크기, 열량, 방사선량 등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새롭게 설계해야 하고, 이에 따른 안전성 검토 또한 새로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지역주민들은 고리1호기 해체로 핵시설이 사라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추가로 사용후핵연료 저장소를 건설해야 하고, 이것이 최대 40~50년까지 운영될 수 있다는 점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미 경주와 영광에서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고 증설을 둘러싼 갈등이 시작된 상황에서 부산은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사실에 묻혀 이 문제가 제대로 공론화조차 되지 않고 넘어가고 있다.
준비없는 핵발전소 해체, 새로운 갈등을 낳는다!
노후 핵발전소는 폐쇄되어야 한다는 것이 탈핵진영의 오랜 주장이다. 하지만 이것이 핵발전소 해체를 엉터리로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미 수많은 핵발전소 해체 경험을 가지고 있는 미국과 독일 등의 경우, 해체 과정에서 새로운 갈등과 문제점이 많이 드러났다. 이는 단지 기술적인 쟁점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주민의 안전, 핵발전소 해체의 책임 소재와 규제 필요성 등으로 이어졌고, 그간 다양한 법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노력으로 전개되어왔다.
하지만 우리는 당장 ‘해체 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장밋빛 환상만 말할 뿐 어느 누구도 핵발전소 해체과정에서의 지역주민 피해, 갈등을 말하지 않는다. 핵발전소 해체는 결코 건물 하나 부수는 것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수십년동안 해체는 진행되며, 거기서 나오는 핵폐기물과 노동자 피폭, 부지 복원과 사용후핵연료 보관 등으로 인해 새로운 갈등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단언컨대 핵발전소 해체는 신규 핵발전소 건설만큼이나 많은 갈등과 논란을 낳을 것이다.
혼란이 발생하고 대비책을 만드는 것은 언제나 많은 비용과 희생을 만든다. 지금이라도 핵발전소 해체과정을 꼼꼼히 살펴보고 문제점을 보완하는 노력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탈핵신문 2017년 6월호 (제53호)
이헌석 편집위원(에너지정의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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