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에너지·기후 정책 이전 정부에 비해 진일보,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에너지·기후 정책 공약이 후보 토론회를 포함한 유세 과정에서 크게 부각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탈핵과 탈석탄, 재생에너지 확대 공약이 후보들 간에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후보들 간의 공약을 면밀히 살펴보면, 에너지·기후정책의 전반적인 방향과 구체적인 실현 방안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차이가 부각되고 생산적인 토론이 이뤄졌다면, 이에 따른 유권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향후 정책 집행에 힘도 실렸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에너지·기후 분야가 대선 후보들의 정책 공약에서 우선순위에 들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물론 이전 대선에 비해 핵발전 안전, 미세먼지 등에 대한 시민들의 걱정과 관심이 깊어지면서 대선 후보들이 앞 다퉈 관련 공약들을 제시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앞으로 공약이 제대로 집행되는지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탈원전 등 친환경 에너지 패러다임으로 국가 정책 전환’을 에너지·기후 정책 목표로 제시했다. 우선, 설계 수명이 남은 핵발전소는 내진설계 기준을 보강하고, 수명이 만료되는 핵발전소부터 해체를 추진한다. 신규 핵발전소는 전면 중단하고 40년 후 핵발전소 제로 국가로의 탈원전 로드맵을 마련한다. 또한 30년 이상 노후 석탄화력발전소는 가동을 중단하거나 친환경 연료로 전환하고, 미착공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는 신설을 중단한다. 대신에 LNG발전소의 가동률을 상향 조정하고, 재생에너지 공급을 확대해 2020년까지 발전량 대비 재생에너지 비중을 20%로 높일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에너지·기후 정책은 이전 정부에 비해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2040년 핵발전소 제로, 2050년 석탄화력발전소 제로, 2040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 40% 등을 제시한 것에 비해서는 가치성과 구체성 측면에서는 뒤처진 측면이 있다. 앞으로 정책 추진 과정에서 정의당 등 다른 정당들과의 협력을 통해 ‘친환경 에너지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라는 정책 방향이 더 가치 있고 명확하게 설정될 수 있기를 바란다.
문재인 정부 ‘탈핵·탈석탄·재생에너지 확대’ 실현을 위해, 조직·제도·예산 개편 선행돼야!
문재인 정부에서 탈핵·탈석탄·재생에너지 확대가 실현되려면 이를 위한 조직과 예산 그리고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폐기 및 대대적인 법제도 개편이 수반되어야 하고, 산업부와 환경부를 포함한 에너지·기후변화 관련 행정 부처 개편에 대한 확실한 목표와 과감한 추진이 동반되어야 한다. 주요 대선후보들이 제시한 바 있는 ‘에너지기후부’ 혹은 ‘기후에너지부’로 통칭되는 정부 조직 신설이 가능할 것이다. 주요 정당들이 대선 이후에도 부처 개편에 대한 공감대를 이어가면서 조직개편에 필요한 정부조직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킬 것인지를 주시해야 한다. 우선적으로는 현재 정부 조직체계에서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 장관 등을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기후 정책 비전을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인사로 임명해야 할 것이다.
당장,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시험대!
당장 임박한 시험대는 올해 말 수립 예정인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될 것이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국가 전력수급의 전반을 다루는 만큼 계획에 따라 온실가스와 대기오염물질, 핵발전의 위험성 등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법 및 조직 체계에서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 에너지 기본계획과 같은 상위 계획이 바뀌지 않은 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에너지 계획 및 연관 계획들 간의 부정합성 문제가 거론된 지 수년이 흘렀지만 한 번 짜인 체계 안에서 이제 겨우 계획들 간에 조정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법체계와 조직이 개편된다고 전제한다면, 새 정부에서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재설정을 포함한 기후변화와 에너지 계획을 통합한 최상위 계획을 먼저 마련하고, 이에 따른 하위 및 연관 계획들을 수립 및 정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공약 중 하나인 ‘탈원전 로드맵’과 에너지·기후 관련 주요 정부계획이 이전처럼 일부 전문가와 정부 관료들에게 맡겨져서는 국가 정책이 친환경 에너지 패러다임으로 전환될 수 없을 것이다.
새 정부 초기 개혁 ‘골든타임’ 놓치지 말고, 국민의 염원을 담아 ‘에너지혁명’ 이루길!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2년에 이어 2017년 대선을 맞이하면서 에너지 대안 시나리오들이 다시 등장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탈핵·에너지전환 시민사회로드맵 연구팀이 ‘탈핵 에너지전환 시민사회 로드맵’을 마련했고, 환경운동연합은 ‘100퍼센트 재생에너지 전환 에너지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주요 정당 중에서는 정의당이 ‘2040년 탈핵, 2050년 탈석탄’을 공약했고, 녹색당과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녹색당 대안전력 시나리오 2030’을 발표했다. 국회 차원에서도 신재생에너지포럼과 신재생에너지학회가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 20% 목표’를 제안했으며, 에너지·기후정책 관련 토론회가 봇물 터지듯 열린 바 있다. 이처럼 에너지 정책 논의가 넓혀진 저변은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기후 정책을 실현하는 데에 큰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이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전문가, 시민사회 등을 아우르는 거버넌스 체계를 바탕으로 시민이 참여하고 합의하는 계획 수립 과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탈핵·탈석탄·재생에너지 확대를 담은 로드맵이 마련되면, 이를 위한 구체적인 예산과 제도가 뒤따라야 한다. 핵연료세 도입과 석탄화력 과세 강화를 포함하는 에너지세제 및 요금제도 개편, 신에너지와 재생에너지를 분리하는 법안 마련, 재생에너지 활성화를 위한 발전차액지원제도(Feed-In-Tariff) 도입 등은 주요 정당들이 공약으로 제시한 것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제도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추진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까지 제시한 공약과 발언들에서 적극적인 의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부디 새 정부 초기에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촛불 시민들이 만들어 준 대선에서 선택된 대통령인 만큼 국민들의 염원을 담아 ‘에너지혁명’을 이뤄주길 기대한다.
탈핵신문 2017년 5월호 (제52호)
권승문(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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