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금) 서울인권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후쿠시마에 남다’가 상영되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 이후에도 사고가 난 핵발전소에서 20km 이내의 강제피난구역에 머물며 생활하는 50대 남자가 주인공이다. 영화는 잔잔하다. 스토리에 억양이 없고 대사도 남자가 가끔 혼잣말을 하듯 흥얼거리는 정도다. 고양이나 소, 타조에 먹이를 주거나 숲을 산책하고 나무 상태를 확인하거나 산소에 가는 남자의 생활 모습을 담을 뿐이다. 1시간 동안 관객은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 이후에도 예전과 변함없는 생활을 관철하려는 고독한 남자의 오기를 목격한다.
▲지난 6월 2일(금)과 4일(일)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영화 <후쿠시마에 남다>가 상영되었다. 서울인권영화제 제공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목격하고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남자 주인공의 외로운 모습 배후에 있는 무언가다. 이것이 바로 핵발전소사고로 상실된 것 즉, 남자가 가지고 있었던 관계성이라고 생각한다. 목장에서 동물들과 노는 유쾌한 관계는 방사능으로 오염된 땅을 밀봉한 검은 봉투 옆에서 방치된 동물들을 살려주는 기묘한 관계로 바뀌고, 숲을 걸으면서 나무를 관리하는 자연과의 생태적 관계는 제염 작업도 못하는 방사선투성이의 숲에 침입하는 위험한 관계로 바뀌었다. 인간관계는 대사에서 이 남자에 가족이 있음을 알 수 있지만 공동생활하는 아버지 외에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묘사되는 인간관계는 제염 작업을 설명하는 직원과의 대화뿐이다.
이런 관계성의 변화가 주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하다. 이 남자는 피난구역에 남았지만 다른 후쿠시마 피난민들은 모두 고향에서 쫓겨나고 조잡한 임시주택에서 타향살이를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전통과 역사가 담긴 공동체는 붕괴되고 독특한 문화는 사라졌다. 정체성을 잃은 피난민들은 예전의 생활을 회복할 수 없다는 상실감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고통을 참을 수 없어 병이나 자살로 죽은 사람도 속출했다. 이런 사망자는 방사능 피폭으로 직접 죽은 사람은 아니지만 핵발전소사고와 관련성이 높은 죽음으로 ‘핵사고 관련사(関連死)’로 불린다. 이 사망자 수는 1300명을 넘는다. 방사선은 염색체를 찢지만 인간의 관계성도 찢는다. 오히려 이것이 더 무서울 수도 있다.
상영 당일 날 50명 정도가 모였고, 나는 관객과의 대화에 나섰다. 한국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와 관련된 주된 소식은 방사능 오염 식품인데 다른 접근법이 있느냐고 질문을 받았다. 나는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가 10만 명 이상이 피난한 한 번의 사고로 생각하지 말고, 고향 상실과 풍요로운 관계성의 파괴라는 비극이 피난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10만 번 이상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답했다.
피난민의 체험담을 모두 들 수는 없지만 하나하나의 사례에서 피난민의 고통을 느끼고 그것으로부터 핵발전소사고 비극의 전체를 상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말 그대로 상상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관계성을 잃은 피난민의 고통에 초점을 맞춘 보도는 한국에서 많지 않기 때문에 사실 어렵다. 그래서 이 영화를 한번 볼 필요가 있다.
탈핵을 외치는 우리는 얼마나 후쿠시마 피난민들의 억울함을 제대로 이해하고 느끼고 있는가? 이 영화 주인공의 고고한 모습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스스로를 성찰해야 할 것이다.
탈핵신문 2017년 6월호 (제53호)
다카노 사토시(경북대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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