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기준치’…“안전기준 아니다”
9월 30일, ‘저선량방사능식품 위험성 공론화’ 세미나 개최 후기
김상철(방사능안전급식실현 서울연대 사무국장, 노동당서울시당 사무처장)
지난 6월 서울시의회는 방사능안전급식실현 서울연대(이하 서울연대)가 제안한 ‘서울특별시 영·유아시설 및 학교 급식 방사능안전 식재료 사용에 관한 지원조례’를 ‘서울특별시 영·유아시설 급식 방사능안전 식재료 사용에 관한 지원조례’로 바꿔 통과시켰다. 여전히 학교행정과 일반행정이라는 구분의 벽은 높았고, 서울시교육청에서 맛보았던 행정의 방사능‘맹(盲)’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사실 이 조례는 2013년에 통과된 서울시교육청 조례를 보충하기 위한 것이었다. 서울시교육청 조례에서는 식품의 방사능 문제를 농약 등 유해물질 중 하나로 나열했고, 이에 따라 지난 1년 동안 서울시내를 통 털어 350건 정도(2014년 9월 정보공개결과)의 방사능 검출검사를 진행했을 뿐이다.
하지만 서울시 조례를 만드는 과정에서 ‘행정을 하는 입장에선 국가기준치를 믿을 수 밖에 없다’, ‘기준치를 강화할 경우 기업에 과도한 규제가 된다’, ‘사실상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실효성도 없다’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게 되었다. 이런 한계야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방사능 무감증’ 혹은 ‘핵 안전 신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분노는 했으나 낙담은 하지 않았다.
결국 서울시의 태도를 바꿔야 구로구에 이어 조례제정 운동을 하고 있던 양천구와 동작구에서 손쉽게 조례가 통과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와중 서울시 조례에 대한 쟁점 협의를 위해 서울시 식품안전과 공무원들과 배석한 자리에서 뜻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일동 후디스 사건 아시죠?”, 물론 알고 있었다. “그 합의 과정에서 환경단체도 기준치 이하의 방사능에 대해 안전하다고 인정했잖아요?”라는 말이 이어 나왔다.
서울연대가 제안한 조례에서는 별도의 기준치에 대한 언급 없이 급식재료 전수조사에 대한 결과를 해당 학부모에게 통지하는 의무조항이 있는데, 기준치 이하의 정보 제공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야기 끝에 나온 이야기였다. 순간 행정이 가지고 있는 방사능‘맹’의 근본에 어떤 원인이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방사능 기준치’에 대한 맹신이었다.
방사능 기준치는 안전 기준이 아니다
장황하지만 서울연대가 지난 9월 30일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과 국회 장하나 의원실과 함께 ‘저선량방사능식품 위험성 공론화를 위한 공동세미나’를 개최하게 된 맥락이다.
우리나라에서 방사능안전에 관해서라면 첫손가락에 꼽히는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이윤근 소장, 반핵의사회 활동가이기도한 한림대 의대 주영수 교수, 오랫동안 시민보건환경에 대한 조사를 앞장서온 것은 물론이고 석면문제를 시민사회에 널리 알린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이 참여했다. 여기에 ‘전국에서 8명밖에 안 되는 환경교육 전공’의 한국환경교사모임 신경준 공동대표와 실제 핵폭탄피해의 당사자이기도 하고 해방 이후 최근까지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놓여 있었던 한국원폭2세환우회의 한정순 회장, 국회에서 4대강 녹조와 고군분투하고 있는 장하나 국회의원 그리고 서울연대 전선경 대표가 패널로 참여했다.
주발제자로 나선 최예용 소장은 2010년에 유럽의회 녹색그룹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유럽방사선위험위원회(ECRR) 보고서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설명했다. 특히 주요 핵산업국가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PR)가 주장하는 ‘기준치 이하의 방사선은 신체에 피해를 주지 않거나, 거의 의미가 없을 만큼 피해를 준다’는 주장에 대해 이미 검토된 과학문헌을 참고하여 반박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즉, 방사선은 저선량, 고선량에 차이가 없이 공통적으로 신체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히며, 특히 저선량의 경우에는 고선량에 비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였다.
이런 입장은 ECRR만의 태도는 아니었는데, 뒤이어 패널발표를 한 이윤근 소장이 소개한 저선량의 영향에 대한 데이터는 놀라웠다. 그저 방사능폐기물 중간보관시설 인근에 산다는 이유만으로도 여성의 성비가 확연히 줄어드는 현상은, 눈에 띄지 않는 방사선의 위험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영수 교수는 2006년 미국의 국립의료원에서 발간한 베어-세븐(BEIR-VII) 보고서를 소개했다. 이 보고서는 그간 방사능계가 신봉해왔던 ‘역치(문턱치)’ 가설, 그러니까 어느 정도 수준의 방사선까지는 영향이 없다는 가설이 잘못되었다는 점, 오히려 역치가 없다는 것을 전제하여 방사선 노출과 암 발생비율이 비례한다는 것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 점을 역설했다. 그러니까 현재 우리나라 정부나 서울시, 일선 구청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안전기준’으로서 기준치라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과학계의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는 중요한 소개였다.
사진 설명, 방사능 기준치는 안전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라 치명적 피해를 가르는 기준일 뿐이다. 기준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방사능 안전 정책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사진출처 민승현, 사진 제공 김상철
‘핵은 안전하다’고 믿는 핵마피아들, 이 사람을 보라
세 분의 전문가가 전달해준 저선량 방사능에 대한 최근의 연구결과와 그 연구가 가지고 있는 함의는 이번 세미나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어 패널로 나선 분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핵에 관한한 중세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신경준 선생은 성인과 청소년들이 방사능 안전에 대한 정보를 취득하는 방법, 그런 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방식이 너무나 차이가 나는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공부’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면 말할 자유조차 주어지지 않는 학교의 분위기가 급식 안전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각자가 알고 있는 방사능에 대한 지식조차 공유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참 답답한 상황은 ‘학부모의 마음으로 나왔다’고 일성을 연 전선경 대표의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언론에서도 미미하게 나올 뿐인 식품 방사능에 대한 문제를 정작 주변의 사람들이 무관심하며 이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저선량방사능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활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또한 의무화된 급식의 성격에 맞게 적어도 급식 식재료만큼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안전기준보다 더욱 강화된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선경 대표는 이런 문제를 시민의 관심과 참여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는데, 이는 국회 장하나 의원이 소개한 독성이 있는 녹조처리를 둘러싼 환경부의 태도를 통해 여실히 증명되었다.
장하나 의원은 여전히 환경부가 ‘관리비용’을 언급하며 위험한 독성을 함유한 녹조처리에 나서지 않고 있으며, 정부 산하기관의 보고서에서도 유아 등에게는 방사능이 더욱 치명적인 영향을 미침으로 관련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음에도 변화하지 않은 정부의 태도를 지적했다. 즉, 시민이 나서지 않아도 정부가 알아서 바꿀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모든 핵마피아들 뿐만 아니라 핵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우리들도 잊고 있었던 국내 핵폭탄피해자의 문제가 있었다. 한정순 선생이 전하는 국내 핵폭탄피해자의 고통은, 감히 ‘알 것 같다’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겉으로 보기엔 저렇게 다니니 멀쩡해 보이죠?”라고 말한 한정순 선생은 젊은 시절부터 인공관절을 사용하고 있다. 선천적 장애는 말할 것도 없고 대를 이어 고통이 이어지는 이들 국내 핵폭탄피해자는 3세까지 고려하며 최대 10만명에서 최소 6만명에 이른다. 전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받은 핵폭탄 피해로 인해 대를 이어가며 고통을 받고 있는 한정순 선생을 보면서,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어떤 것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정책을 결정하고, 그로 인해 돈을 버는 자들이 아니라 그저 정부의 말을 믿고 따랐을 사람에게만 전가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답답했다.
사실 저선량 방사능 문제는 우리 시민사회 내에서조차 쉽게 합의가 되지 않는 쟁점 중 하나이다. 그래서 서울연대 입장에서는 이제 막 ‘말을 건넨 것’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다. 수많은 이야기가 모이고 쌓여서 정말로 핵으로부터 안전한 세상을 만들 수 있길 기대한다.
발행일 : 201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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