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마을’의 이야기를 듣다
- 임준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국장
『원전 마을』(김우창 지음, 경주환경운동연합 기획, 한티재, 2022년 2월)
2017년 1월, 겨울이었다. 대한민국이 한창 대통령 탄핵으로 어수선하던 시절, 탈핵활동가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경주로 향했다. 1박 2일 동안 강의도 듣고, 토론도 하고, 밤이 늦도록 이야기도 나누고 다음 날 아침을 맞았다. 2일 차 마무리 때 경주의 활동가들이 무대에 섰다. 전날 강연을 듣는 와중 자신의 몸에서, 그리고 손자·손녀의 몸에서 삼중수소가 검출되었는데 괜찮은 것이냐 물었던 한 여성, 황분희 씨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는 강사가 이미 피폭된 것이라고 말하자 울음을 터뜨렸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어 무대에 선 그녀는 “오늘 제가 촛불집회에 발언자로 초청되어 서울에 올라가게 되었다”고, “제 발언을 한번 미리 들어주시겠느냐”고 말했다. 그녀는 친근한 경상도 사투리로, 떨림 가득한 목소리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와 그 목소리를 지난 5년간 그렇게 자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심지어 이번 책을 읽는데도 그녀의 목소리는 저자 김우창 씨의 인터뷰 인용문을 통해 생생히 재생되어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원전 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사라진 옛 지명 ‘월성’으로 더 유명한 곳에 사회학자인 저자 김우창 씨가 8개월을 머물며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책이다. 그의 글은 친절하고 간명하며, 책을 집어 들면 단숨에 읽힐 만큼 흡입력이 있다.
<원전 마을>은 핵발전소가 안전하다는 말을 믿고 지금껏 걱정 없이 살아오던 이들이 이제는 매주 상여를 지고 시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후쿠시마 핵사고가 일어나고 위조 부품 비리 사건이 연이어 밝혀지면서 한국에서 핵발전소 반대의 목소리가 가장 높아지던 시기, 핵발전소 최인근 지역인 월성에서도 주민들의 불안은 커져갔다. 핵발전소의 위험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 그것도 심지어 중수로 특유의 감속재인 중수 때문에 다른 핵발전소에 비해 삼중수소라는 방사성 물질에 일상적으로 더 많이 노출되는 동네였다. 주민의 증언을 들으면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핵발전소는 ‘죽음과 동의어’였다. 그렇기에 주민들은 상여를 끌었다.
주민들의 불안은 기우가 아니었다. 후쿠시마 핵사고를 차치하고서라도 핵사고 이후 양남면 일대, 특히나 핵발전소가 훤히 보이는 나아리와 나산리는 집을 팔고 나가고 싶어도 거래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창살 없는 감옥이 되었다. 누구도 위험천만한 핵발전소 지역에 들어와 살려고 하지 않았다. 처음 72가구가 모여 시작된 주민대책위는 여러 어려움으로 인해 현재는 10여 가구만이 남아서 상여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한수원과의 관계나 생계유지 때문에 투쟁을 이어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변에서 삼중수소가 발견되고, 이와 관련된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곳은 살만한 곳이 아니었다. 특히나 지진이 일어났을 때 주민들이 겪은 두려움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문제들이 발생하고 피해를 겪고 있는 동안에도 주민들은 국가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했다. 심지어 탈핵을 하겠노라고 선언하고 자신들을 찾아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주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법안을 개정하여 구제책을 찾아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암울했다. 심지어 그렇다면 핵발전소 사고가 났을 때 안전하게 지켜줄 방재대책이라도 제대로 되었는지를 물었으나 납득이 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었다.
대책위를 만들고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7년 되던 2021년 8월 27일, 주민들은 코로나로 힘든 상황이지만 7주년 행사를 치렀다. ‘간절히 바라옵건데, 이주’는 그 행사의 제목이었다. 엄청난 보상이나 배상을 바라는 것 아니었다. 그저 가족들과 함께 핵발전소로부터 먼 곳에서 살고 싶다고 요구하며 매주 상여를 맨다.
저자는 불안과 슬픔, 희망과 절망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그리고 싸움하는 주민들에 대한 존경을 담아 책을 썼다고 말한다. 저자가 홍은전의 글을 빌어 말하듯 차별과 혐오에 주눅들거나 복종하지 않고 저항하는 이들의 저항은 당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7년이 넘는 시간을 버텨온 주민들의 싸움이 여전히 쉽지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순응하지 않고 저항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월성의 주민들뿐 아니라 모든 ‘원전 마을’이 각자의 삶으로 저항의 이야기를 써 내려 가고 있다.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핵발전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물론 새로운 운동의 동력도 생겨날 것이다.
탈핵신문 2022년 4월(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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