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24일 전국 436개 단체와 개인 578명이 참여한 ‘탈핵 비상선언’ 기자회견에서 조천호 기후위기비상행동 운영위원이 발언한 내용 전문을 싣습니다.
핵발전은 기후위기 대응의 걸림돌일 뿐
- 조천호 기후위기비상행동 운영위원
△ 8월 24일 한국YWCA연합회 A스페이스와 온라인 줌을 이용해 열린 ‘탈핵 비상선언’에는 전국 436개 단체와 개인 578명이 연명했고, 이들은 기자회견 주체로서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행사에 182명이 참여했다. (사진=탈핵비상선언)
기후위기가 더 빠르고 더 강하고 더 명백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화석연료 기반의 산업에서 재생에너지 기반의 산업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 세계적 흐름과는 달리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핵발전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너무나 큽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위기는 기후위기로 인한 전환의 시대에 과거 한때 성공에 취한 상태에서 깨어나지 않는 데 있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뒤떨어진 재생에너지 후진국이 되었습니다.
핵사고와 핵폐기물의 위험
핵발전론자들은 핵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자동차 사고보다 훨씬 적다고 합니다. 자동차 사고로 많은 사람이 사망한다고 해도 사회적 탄성력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핵발전 사고가 일어나면 그동안 핵발전으로 인한 모든 편익을 능가하는 피해가 발생합니다. 인간이 제한 없는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면 세상에 무슨 문제라는 게 있기나 하겠습니까? 핵발전 사고로 인한 위험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지만, 안전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일본 동북부 지진과 그에 따른 핵발전 사고는 가장 치밀하게 구축된 일본의 안전망 역시 무력하다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처리 비용이 2018년까지 236조 원에 달했습니다. 그 비용으로도 해결하지 못해 일본 정부는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내다 버리겠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수습 비용으로 우리나라 1년 예산의 2배인 1천조 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합니다. 게다가 그 비용 대부분은 핵발전 회사가 아니라 세금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핵발전 상위 10개국 가운데 인구밀도는 우리나라가 가장 높습니다. 핵발전 주변 지역 인구가 많고 원자로가 조밀하게, 그것도 한 부지에 많이 몰려 있습니다. 기껏해야 반경 100km 안에 인구 10만 명 정도가 사는 후쿠시마가 아니라, 반경 100km 안에 약 1천만 명이 사는 우리나라 핵발전소가 터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고뿐만이 아닙니다. 원자로에서 수만 년 동안 방사능을 가진 핵폐기물이 나옵니다. 이는 우리 세대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미래 세대의 장기적 안전을 내다 버리는 것입니다. 핵발전은 세대 간 착취라는 점에서 더욱더 문제가 큽니다.
시장에서 퇴조 중인 핵발전과 성장 중인 재생에너지
우리는 내일의 위험을 걱정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늘 당장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현재의 전력 공급 체계에서 핵발전은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그러해야 할 근거는 없습니다. 핵발전은 미봉책일 뿐이며 대체 불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핵발전은 '위험과 혜택' 수준뿐만이 아니라 ‘비용과 효과’ 측면에서도 더 가능하지 않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비용은 각각 90%와 70%가량 떨어졌습니다. 재생에너지에 기술혁신이 집중되고 이와 함께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2020년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태양광 발전이 가장 저렴한 전기 공급원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리드 기술의 혁신이 일어나고 있고 그 기술을 실현하는 배터리 가격도 지난 10년 동안 약 80% 이상 하락했습니다. 전 세계 신규 전력 중 재생에너지가 2001년에 약 20%였는데 2020년에 80% 이상으로 성장했습니다.
세계 시장은 이러한 추세를 반영합니다. 일본의 미쓰비시가 터키에서, 히타치와 도시바가 영국에서 이미 수주한 핵발전소 사업을 포기했습니다. 이미 투자한 수조 원은 매몰 비용으로 처리했습니다. 계속 진행할수록 더 큰 손실이 예상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가장 큰 야당과 보수 언론이 주장하듯 핵발전이 그토록 엄청난 이익이 나는 노다지 시장이라면 왜 기업과 개인 투자만으로 해외 진출을 하지 못하고 정부의 공적 자금에 의존하려 합니까? 이익이 나면 소수가 독차지하고 손해가 나면 세금으로 시민 모두가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재생에너지 전환을 해야 합니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사 등 글로벌 대기업들은 자신들에게 납품하는 기업들에게 100% 재생에너지로 만든 상품을 요구하려 합니다. 이 재생에너지에는 핵발전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핵발전은 핵폐기물을 쏟아내 재생에너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은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생산된 상품에 탄소 국경세 부과를 준비 중입니다. 이것은 선진국들이 앞선 재생에너지 기술력으로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기술 강국 대한민국은 핵과 석탄발전을 붙들고 있다가 세계 시장에서 걷어차기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에까지 몰리게 되었습니다.
태양광산업은 2025년경 연간 500조 원으로 성장할 전망입니다. 이에 비해 전 세계적으로 핵발전은 그 규모나 종사자 수에서 재생에너지에 비해 10분의 1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먹거리를 작고 축소되는 핵발전에서 찾아야 할 때가 아니라 훨씬 크고 성장하는 재생에너지에서 승부를 걸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에너지 수입총액이 1년에 약 150조 원 정도 됩니다. 재생에너지는 외국에 지급해야 하는 이 비용의 많은 부분을 줄이고 그만큼 우리나라 안에서 새로운 부를 창출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조건
국내 가장 큰 야당과 보수 언론은 우리나라가 재생에너지를 할 자연 여건이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태양광은 위도가 낮을수록 유리한데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의 나라 독일보다도 위도가 무려 15도나 낮은 곳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풍력이 북유럽처럼 풍부하지는 않지만, 상공에 제트기류가 흐르기 때문에 작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보존해야 하는 농지와 산지가 아니어도 건물, 고속도로와 철도 주변, 주차장, 댐, 저수지와 대륙붕 등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할 곳이 우리 국토에 널려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태양광은 7~8년 전보다 효율이 2배 이상 좋아졌고 계속 효율 혁신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만큼 설치에 필요한 면적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중앙 집권에서 지방 분권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에너지를 사용할 것인가는 기술적인 문제를 넘어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핵발전은 지방에서 전력으로 만들어 도시와 산업 지역으로 전달합니다. 이는 지역 간의 불평등을 전제로 합니다. 태양과 바람은 원자핵과 화석연료보다 에너지 농축이 적어 수많은 지역에서 에너지를 모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비효율성과 제약이 오히려 실질적인 이점이 될 수 있습니다. 곧 핵과 석탄 발전은 소수가 지배하는 중앙집권적인 에너지 체계지만, 재생에너지는 분산적이므로 시민이 지배할 수 있는 분권적인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정책이 수립된다면, 재생에너지는 소수가 지배하는 에너지 독점을 무너뜨려 우리 공동체를 바로잡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과거의 방식을 지속하느냐, 미래의 지속 가능으로 전환하느냐의 갈림길에 핵발전과 재생에너지가 있습니다. 재생에너지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징검다리이지만 핵발전은 걸림돌일 뿐입니다.
탈핵신문 2021년 9월(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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