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선으로 기존에 잡혀 있던 정치 일정이 모두 바뀐 상황에서, 탈핵의 정치적 국면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통령 선거 당시 공약과 협약 형태로 약속했던 많은 내용들이 어떻게 실현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이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최근 기자회견, 언론 기고 등을 통해 핵산업계가 조직적으로 반발하면서, 신고리5·6호기 건설 중단을 둘러싼 논쟁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조기 대선으로 문재인 정부는 인수위조차 만들지 못했고, 산업부 장관 임명조차 진행되지 못한 상태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핵정책 추진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건설 중인 핵발전소의 공정률은 더욱 높아졌고, 이에 따라 백지화에 따른 매몰비용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주목해봐야 할, 문재인 대통령의 고리1호기 영구정지 기념사
이런 상황에서 6월 19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진행한 기념사는 향후 문재인 정부의 탈핵정책의 방향을 나타내는 첫 발언이었다. 이날 기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대통령직속위원회로 승격 ▲준비 중인 신규 핵발전소 전면 백지화 ▲설계수명연장 중단 ▲월성1호기 가급적 빨리 폐쇄 ▲신고리5·6호기 빠른 시일 내 사회적 합의 도출 ▲탈핵 로드맵 빠른 시일 내 마련 등을 밝혔다.
이는 선거운동 당시 공약으로 다루었던 내용의 대부분을 담은 것이다. 반면 핵발전소 주변 지역 대책위(탈핵지역대책위) 등과 진행한 협약 내용 중 일부는 빠져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신고리4호기(공정률 약 99%)와 신울진1·2호기(공정률 약 95%) 등 건설 중인 핵발전소 건설 중단 문제와 파이로프로세싱 실험 중지와 관련한 것들이다. 이는 향후 문재인 정부의 탈핵정책이 탈핵지역대책위 등과의 정책협약보다는 대통령 선거 공약을 중심으로 추진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부산-울산 지역을 중심으로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신고리5·6호기 건설 중단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 도출’로 표현을 바꾸었다. 이후 총리실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신고리5·6호기의 공사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3개월에 걸쳐 공론화위원회를 꾸려 건설 재개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선거 공약에는 ‘공론화’가 아니라, ‘건설 중단(혹은 백지화)’이라고 표현되어 있었기에, 탈핵운동 한편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공약 후퇴’라는 비판에서는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국정기획자문위 100대 과제와 8차 전력계획 어떻게 될 지…
신고리5·6호기 건설 문제는 향후 일반 시민들로 구성되는 배심원단의 판정과 공론화위원회 활동을 통해 사실상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종 결정은 정부가 할 수 밖에 없지만, 배심원단의 결정을 정부가 반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영덕·삼척 등 계획 중인 핵발전소 문제나 월성1호기 문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등 다른 탈핵 현안들은 어떻게 될까? 문재인 대통령 선거 공약집에 기본 방향이 나와 있으나, 이들에 대한 후속조치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7월 중순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100대 국정과제’에 어떤 내용이 포함되느냐가 1차적인 관심이다. 이 100대 과제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의 국정 과제가 담겨지기 때문에, 주요 선거 공약이었던 탈핵공약의 추진 계획은 빠질 수 없는 내용 중 하나일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 중요한 기점은 올해 연말까지 완성될 것으로 예상되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력계획)이다. 전력계획에는 향후 15년 동안 발전소의 건설 및 폐기 계획이 포함되기 때문에 이들 내용에 노후 핵발전소와 신규 핵발전소에 대한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윤곽은 잡혀가고 있지만, 험난한 탈핵 정책
문재인 정부 출범 2달이 지난 지금, 문재인 정부의 탈핵정책 추진 방향은 조금씩 윤곽이 잡혀가고 있다. 아직 산업부 장관이 임명되지 않았지만, 산업부 장관 역시 기존 관료나 핵발전 관련 인사가 아닌 교수출신 인사를 지명했다. 이는 향후 탈핵정책 추진에 긍정적인 신호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탈핵정책 추진 계획에 장밋빛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원자력학계와 핵산업계의 반발이 연일 계속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여당이나 정부의 대응은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그나마 탈핵정책 추진을 향한 국민 여론이 강한 상태이기에 아직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찬핵 진영의 반발이 계속된다면 이후 탈핵정책 추진은 매우 험난한 과정을 겪을 수 있다.
아직 상세계획이 나오지 않은 사용후핵연료 문제나 핵재처리 연구 등 지역별로 산적해 있는 현안들도 주요한 변수이다. 특히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의 경우, 과거 핵폐기장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매우 큰 정국 현안으로 대두되었던 사례를 생각할 때, 세밀한 대비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문재인 정부의 탈핵정책은 더 큰 난관에 부딪힐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핵정책은 말 그대로 이제 ‘첫발을 내딛은 정도’이다. 처음부터 모든 결과를 얻어올 수는 없겠지만, 반대로 첫 발을 잘못 내딛으면 이후에 매우 곤란해지는 것이 세상만사이다. 아직은 계획의 윤곽을 잡아가는 단계이지만, 탈핵 진영과 국민들의 관심이 계속 집중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탈핵은 결코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탈핵신문 2017년 7월호 (제54호)
이헌석 편집위원(에너지정의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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