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8일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사실 선거 보름 전까지만 해도 차기 대통령은 미국 최초의 여성 후보가 당선되는 것으로 전망되고 있었다. 세 차례의 공중파 토론에서 거의 연패를 거듭했을 뿐만 아니라 한 달 전에 여성 비하 발언이 공개되며, 공화당의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은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덕분에 민주당의 힐러리 후보는 차기 정권의 내각까지 미리 준비한다며 논란을 빚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선거를 십 여일 남겨놓은 시점에서 무혐의로 결정난 이메일 스캔들을 연방수사국이 또 다시 발표하면서 지지율이 급변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예상하지 못했던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말았다.
선거 결과가 확정된 지금의 시점에서는 트럼프가 과연 어떤 대통령이 될 것인지에 대해 미리 짐작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겠지만, 선거 기간의 평가들을 바탕으로 추측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먼저 오바마 대통령은 트럼프를 자질을 갖추지 못한 후보자라며 맹렬히 비난했었고, 실제로도 대선 중에는 트럼프의 낙선을 위해 전력을 다했었다. 한편으로는 보수 성향의 신문을 포함한 100대 언론사에서 트럼프를 가장 부적절한 최악의 대선 후보로 선정하기도 했었다. 국제 관계라는 측면에서 보면, 기후변화 협약에 대한 거부뿐만 아니라 주한 미군의 방위비 증액 요구까지 포함해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핵에너지와 관련된 트럼프의 입장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5개의 공식적인 핵무기 보유국 가운데 하나이다. 즉, 대통령의 결정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지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대선 기간에 트럼프는 외교 전문가들에게 대통령이 핵무기를 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지 여러 차례 질문했다는 일화도 소개된 바 있다. 심지어 한반도와 관련해서는 한국이 방위 부담금을 늘리지 않는다면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대신에 핵무장을 허용해주겠다고 발언했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인물이다. 이런 후보자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으니, 세계는 핵 위험의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남의 나라인 미국에서 눈을 돌려보면, 한국의 정치 상황도 핵폭탄을 맞은 것처럼 요동치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정치적 격동의 진원지는 역시나 대통령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설마 했었던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 농단이 사실로 드러나며, 한 달 넘게 수백만 명이 참여하는 촛불집회로 정치적 혼란에 휩싸여 있다. 물론 그 사이에 대통령에 의한 수차례의 대국민 담화가 발표되기는 했지만, 기자회견 이후에 여론은 더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핵에너지와 관련해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은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 배후에 핵무기 개발이 관련되어져 있다는 음모론이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있으며, 당시 영부인을 대신해서 국정을 지켜봤던 장본인이 바로 지금의 대통령이다. 게다가 한국 핵에너지 정책의 제도적 기반이 되는 한·미원자력협정을 40여년 만에 개정하는 작업이 실제로 이번 정부 하에서 이루어졌다. 다행히도 미국의 반대 덕분에 핵개발은 상당부분 제약될 수 있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격랑에 빠진 한국 사회에서는 현재 박근혜 이후의 정부에 대한 논의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퇴진을 언급하자 정치권에서는 차기 대권을 위한 손익을 빠른 속도로 계산하고 있다. 즉, 언제 어떤 시점에서 어떻게 대선이 치러져야 자신에게 유리할 것인지를 놓고 여야가 다툼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들은 헌정을 무너뜨린 지금의 대통령을 쫓아내고, 단지 국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해줄 사람만을 원하고 있을 뿐인데, 정치인들은 자신의 주판만 두드리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원칙을 토대로 판단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누구라도 죗값을 치르는 게 상식이다. 하야, 퇴진, 탄핵이라는 어떤 결정도 이러한 원칙을 준수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피의자의 면피용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황당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에서 상식과 원칙을 토대로 국정을 정상화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핵에너지 대한 방향은 앞으로 어떻게 정리되어져야 할까? 물론 핵 문제도 복잡한 사안이기에 마찬가지로 원칙에 기반해서 정리되어져야 한다. 정책은 ‘철학을 기반으로 세력을 규합해서 정치가 만들어내는 제도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이 최순실 사태에 분노한 이유는 최소한의 철학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었던 대통령이 사실은 꼭두각시처럼 놀아나며 국정 전반을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논의되는 포스트 박근혜 정부 하에서의 핵에너지 정책은 철학에 기반해서 논의가 진행되어져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핵이 바람직한 에너지인지 아닌지에 대한 입장을 가지고 현실 정책을 고민하는 정치인이 다음 대한민국을 맡아주어야 할 것이다. 탈핵운동도 최소한 허수아비가 아닌 사람과 논의할 수 있기를 촛불에 담아 간절히 바래본다.
탈핵신문 2016년 12월호 (제48호)
진상현(경북대학교 행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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