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후보들 간의 공방이 벌써부터 뜨겁다.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당 내부 경선이 진행되기 때문에 정책, 공약의 차별성을 보여주어야 하기도 하거니와 당 외부적으로도 후보의 자질이나 정책을 비교 검증해야 하기에 과열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 치열한 공방 가운데 ‘탈원전’이 주요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장면1 _ 19대 대통령선거
지난 2017년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를 내세운 민주당은 주요 정책공약에 ‘탈원전 등 친환경 에너지 패러다임으로 국가 정책 전환’을 포함했다.
<19대 대선 민주당 탈원전 공약 주요 내용> ①노후원전 폐쇄 및 신규 중단 등 원전사고 걱정 해소 ②신규원전 전면 중단 및 40년 후 원전 제로 국가로의 탈(脫)원전 로드맵 마련 ③설계수명 남은 원전의 내진 보강 및 설계수명 만료되는 원전부터 해체 추진 ④지자체와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원자력안전협의회의 법적 기구화․ 원전 안전관리 관련 업무의 외주 금지와 직접고용 의무화 |
당시 자유한국당의 후보는 홍준표 의원이었는데 핵발전을 포함한 에너지정책과 관련한 별도의 공약을 제시하지 않았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사태로 치러지게 된 19대 대선은 큰 표차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고, 100대 국정과제 수립과 이후 고리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 등에서도 ‘탈원전 정책’을 확실히 했었다.
장면2 _ 21대 국회의원 선거
2020년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재앙’이라고 규정하며 1호 공약으로 “국민의 전기요금 걱정을 덜기 위해 에너지 관련법을 개정해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21대 총선 미래통합당 탈원전 정책폐기 공약 주요 내용> _ 탈원전 정책폐기로 안전하고 값싼 전기 국민께 제공 ①탈원전 에너지 정책폐기, 세계 최고의 대한민국 원전산업 육성및 원자력안전 강화 ②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 및 월성1호기 재가동 ③원전 관련 기업과 협력업체에 경영자금 우선 조달, 원자력학과 학생들 학업 관련 특별 조치 강구 ④친여 실세들의 태양광사업 탈법과 비리 척결 위한 국정조사 및 특검 법안 추진 ⑤합리적 에너지 믹스 정책 통해 미세먼지 획기적 저감 추진 ⑥국제공동연구 참여 통해 원전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향상 |
문재인 정부의 출범 이후부터 원자력정책연대 등 친핵 성향의 단체들과 손잡고 탈원전 반대 100만 서명운동을 벌여오는 등 탈원전 정책을 공격하는 것을 전략으로 삼아 정권을 되찾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1대 총선에서도 민주당이 과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면서 미래통합당의 전략은 실패하고 말았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기후위기와 미세먼지로부터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에너지 부문의 공약을 제시하기는 했으나, 19대 대선 때와 달리 ‘탈원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야당과 찬핵 단체들의 계속되는 공격과 소위 ‘탈원전 죽이기’ 언론 보도 등에 적극 대응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음을 반증한다.
장면3 _ 4.7 재·보궐선거
올해 4월 치러진 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서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다시 쟁점화됐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후보 시절 “핵발전소 산업 육성이 세계적 추세라며, 신규 핵발전소를 더 건설해야 하고 문재인 정부의 탈핵 정책도 전면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과학에 대한 기본 지식도 없이 핵발전소 사고에 대한 불필요한 공포심을 조장한다며, 탈핵의 요구가 관념적인 것”이라고 했다. 당시 민주당 김영춘 후보는 “탈원전 정책이 아니라 에너지전환 정책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라며 “우리나라는 매우 온건적인 탈원전 정책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원전의 위험성과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 등으로 인해 대체 에너지를 찾는다면 길게 보고 탈원전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지만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 해외 원전 수출, 고준위핵폐기물의 졸속 재검토 문제 등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모순적 행보로 김영춘 후보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했다.
여당 내에서도 ‘탈원전’ 아니라며 말 바꾸기
야당, 보수단체, 원자력노동조합 등 찬핵세력들로부터 탈원전 정책폐기의 목소리가 거세지는 동안 정부는 그야말로 나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여당 내에서도 탈원전이 아니라거나, 계획 중이었던 신규핵발전소는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그야말로 표류하게 됐다.
대선후보로 출마한 이낙연 전 총리는 총리 시절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탈원전은 부적절한 용어”라며 “60년에 걸쳐 원전 의존도를 줄여가자는 것이고 세계 추세에 맞춰 신재생에너지를 그만큼 채워가라는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송영길 대표는 2019년 “원자력산업 생태계가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세먼지와 지구온난화 주범인 노후 화력발전소 대신 신규 원자력발전을 건설해야한다”, “신규원전으로 안전성이 강화된다” 등의 주장을 하면서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러한 찬핵 발언에 대해 당내에서도 문제 제기가 여러 번 있었으나 발언을 철회하거나 해명한 적은 없다. 대표가 되고 난 이후에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소형원자로(SMR)"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대 대선 앞두고 또다시 ‘탈원전’ 공방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 간에 탈원전 공방이 다시 쟁점화됐다. 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출마 선언 이후 첫 정책 행보로 7월 5일 주한규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를 만나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같이했다. ‘탈원전과 관련한 행보를 가장 먼저 보인 이유는 무엇이냐’는 기자 질문에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총장직을 그만두게 된 것은 월성원전 관련 사건 처리와 직접 관련이 있다”라고 답했다. 다음 날 카이스트 원자력공학과 전공생들과의 간담회에서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성급했다고 비판을 이어갔다.
지난 7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윤석열, 최재형 두 사람이 탈원전이라는 정부 핵심가치에 맞서는 형태인데’라는 질문에 대해 “탈원전은 그 목표가 정확했느냐에 대한 부분도 있지만, 추진과정에서 국가 산업을 망가뜨리고 절차를 무시하는 상황이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시민사회, 탈핵 비상선언 선포
시민사회는 대선주자들의 이 같은 탈원전 공방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표류하면서 탈핵을 위한 어떤 제도적 장치도 만들지 못한 현실에서 정쟁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탈원전 정책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핵산업계가 곧 수명이 만료될 고리 2호기에 대한 폐쇄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고, 신한울 3·4호기의 건설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 여당이 탄소중립과 기후위기 대응을 운운하며 크기만 작아진 핵발전소인 SMR의 건설과 실현가능성이 없는 핵융합에 수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한 상황이다.
탈핵시민행동을 비롯한 전국의 탈핵시민사회단체는 이러한 정치권 등의 행보에 제동을 걸기 위해 <탈핵 비상선언>을 하고 행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21일로 예정되었던 서울에서의 탈핵 비상선언 기자회견은 수도권 코로나 확산세로 인해 연기했고, 온라인 행동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들은 정치권이 기후위기를 기회 삼아 핵산업을 부활시키려는 꼼수를 비판하고 실질적인 탈핵, 에너지전환을 위한 정책제시와 이행을 요구할 예정이다.
대선 국면에 ‘탈핵’을 어떻게 부각시킬지 시민사회의 몫도 크다.
강언주 통신원(부산에너지정의행동 활동가)
탈핵신문 2021년 7월(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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