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포크가수의 대부라고 하든 한국 최초의 히피라고 하든, 한대수에게 그런 별명은 잘 붙여줘야 본전일 것 같다. 그만큼 그는 자유인이지만 그 자유는 체제와 주류가 뭐라 하든 하고 싶고 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을 한다는 의미의 자유일 것이다.
그가 2013년에 발표한 ‘반핵송’이 하나 있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지 2년이 지났지만 반핵운동에 나서는 사람들은 아직 적고 아시아의 국가들이 슬금슬금 핵무장을 꿈꾸는 분위기에 부아가 났던 모양이다. 그렇게 그의 나이 65세에 발표한 노래가 ‘누크 미 베이비(Nuke Me Baby)’다. 직역하자면 ‘나를 핵무기로 막 괴롭혀 볼 테냐’ 정도가 되겠지만 가사는 상당히 야하게도 해석될 수 있는 블랙 유머다.
이봐요 당신 나를 핵무기로 괴롭혀줘요 이 밤이 새도록 / 그러지 않으면 내 자신을 핵무기로 땅에 처박을 거니까 / 앞으로 옆으로 뒤로 / 북한도 남한도 일본도 중국도 온 세계가 핵이 되길 원하네요
몇 문장 안 되는 분량의 단어들이 강렬한 락의 선율을 타고 흘러간다. 한대수가 곡과 노랫말을 만들었고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이 연주에 참여했다. 노래 자체가 많은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곡 발표 당시에는 여러 매체에서 기사화되었다.
그때의 인터뷰 기사들을 보면, 자유인 한대수가 이 노래를 만들어 부른 건 전혀 의아할 게 없는 일이지만, 그의 가족과 관련된 맥락은 흥미롭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딸 ‘양호’(그는 좋다는 의미로 ‘양호하다’라는 표현을 굉장히 많이 쓰고 좋아한다)와 같은 미래 세대가 양호하게 살려면 평화롭고 깨끗한 지구를 물려줘야 하며, 이제 ‘꼰대’가 된 젊은이들에게 반핵과 평화의 영감을 전해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대수는 후대에게 전해질 것은 핵쓰레기 밖에 없다고 염려한다. 핵을 사용하고 남은 오염물은 500년 이상 간다는데 대체 어디에 두고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겨주려는 것인지, 그리고 이미 독일 같은 나라는 태양광 등 재생가능에너지로 대안을 찾고 있는데 한국은 왜 이렇게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지를 반문한다.
한편, 그의 아버지는 서울공대 출신으로 동양 최초의 핵물리학자가 되어 미국에서 유학하다가 한 대수가 일곱 살 때 실종되었다. 아버지는 17년이 흐른 뒤 가족 앞으로 돌아왔지만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핵무기를 만드는 데 참여한 오펜하이머도 핵폭탄의 현실화되자 크게 후회했다고 하는데, 자신의 아버지도 오늘의 상황을 보면서 후회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사연을 듣고 보니, 그의 대표곡도 또 다르게 들린다. “(핵에너지의) 장막을 거둬라, (지금 당장 밖에 보지 못 하는) 너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 창문을 열어라 (낡고 위험한 에너지에 대한 걱정 없이)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 번 또 느껴보자”. 다들 행복의 나라 갑시다!
김현우 편집위원
탈핵신문 2020년 3월(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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