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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환경오염 피해 연구, 핵발전 피해 연구의 출발점

∥ 책 소개

환경오염 피해 연구, 핵발전 피해 연구의 출발점

- 홍덕화 충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핵발전의 사회적 비용은 제법 익숙한 말이지만 단순명료하게 말하긴 쉽지 않다. 좁게 보면 입지 선정과 시설 건설 과정에서 사회갈등을 무마하기 위해 쓰이는 비용부터, 넓게 보면 안전규제 강화나 방사성폐기물 처분에 필요한 비용의 변화까지 사회적 비용의 이름 아래 논의되고 있다. 다만 사회적 비용이 제기하는 문제는 비교적 분명하다그동안 저평가되거나 누락되어 온 비용을 핵발전의 비용으로 고려하는 것!

 

사회적 비용의 범위를 확장하고 제대로 된 비용 추정을 요구하는 데 탈핵운동이 앞장서왔다는 점은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회적 비용이라는 표현이 거슬린다면, 이를 피해라 바꿔 불러도 좋다. 열폐수로 인한 어업 피해 보상에서부터 방사선 피폭에 의한 건강 피해까지 탈핵운동의 역사는 피해를 가시화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지난한 다툼으로 채워져 있다. 아직 인정받기는커녕 가시화되지 못한 피해도 수두룩하다.

 

『피해자 삶의 복원을 위한 환경오염피해의 사회모델 개발: 오염공동체 사례를 중심으로』(김도균 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2020)

 

핵발전의 피해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데 환경오염 피해연구만큼 도움이 되는 것도 없을 듯하다. 이에 비춰 말하자면, 피해자 삶의 복원을 위한 환경오염피해의 사회모델 개발은 그간의 환경오염 피해연구를 바탕으로 사회적 피해를 분석하는 길을 탐색하는 길잡이 같은 연구라 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오염피해는 잠복기를 거쳐 뒤늦게 확인되는 일이 빈번하다. 또한 회복할 수 없는 건강 피해가 일어난 뒤 피해가 가시화되는 경우가 많다. 어렴풋하게나마 피해 사실이 드러나더라도 곳곳이 가시밭길이다. 단적으로 역학 조사를 해도 환경오염과 건강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는 자주 논란에 휩싸인다. 신체적 피해로 인해 개인의 삶 자체가 뒤흔들리고 집단적, 사회적 피해로 확산하는 것은 공식적인 피해로 거론되는 일 자체가 매우 드물다. 그리 새롭지 않은 이야기지만 다수의 체험을 구체화하면서 그 안에서 난점을 찾는 게 해결책을 모색하는 출발점인 것도 사실이다.

 

피해의 사회구조론, 재난 연구 등 여러 갈래의 환경오염 피해연구에서 눈여겨볼 지점 역시 어림짐작해온 것들을 체계적으로 나누고 설명하는 방법이다. 예컨대, 일본의 공해 피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정립된 피해의 사회구조론은 개인적, 신체적 피해와 사회적 피해의 연쇄 구조를 해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편 재난 연구는 피해를 가중시키거나 피해 복원을 지연하는 요인으로 취약성과 복원력에 주목한다. 화폐적 가치로의 피해 추정과 조직화된 저항, 가해자의 책임 회피 전략 등이 뒤엉켜 만들어낸 현상으로서 피해를 바라보는 접근법 또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국내외 환경오염 피해연구를 되짚으며 피해자 삶의 복원을 위한 환경오염피해의 사회모델 개발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문제들에 환경오염피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시장 가치로 치환되지 않는 피해를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보고서의 문제의식이 집약된 환경오염피해평가 변수는 오염피해를 추정하는 도구이자 피해의 경계를 둘러싼 쟁투의 지점을 암시한다. 반복하자면, 환경오염피해는 생명과 신체 피해에 국한되지 않고 우울증, 불안감 등을 포괄하는 정신 건강 피해 역시 환경오염피해의 일부이다. 경제적 피해의 범위 역시 재산상의 피해나 소득 감소를 넘어서 생계수단의 변화, 노동시간과 강도의 불안정화로 확장된다. 나아가 가족 및 이웃과의 갈등, 사회적 교류 및 여가생활의 위축 등 환경오염에 노출된 이들이 겪는 삶의 변화 자체를 피해의 시각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핵발전 피해는 실재하는 위험인 동시에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탈핵운동이 지속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다퉈야 할 대상이다. 달리 말하면, 피해의 범위는 그 자체로 무엇이 문제이고 누구의 시선에서 문제를 진단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와 같다. 역학적 인과관계 추정의 방법이나 가해자의 책임 강화 방안까지 답을 찾아야 할 문제들이 여전히 많지만 사회적 피해로의 확장을 모색해온 환경오염 피해연구를 출발점 삼아 핵발전의 사회적 비용에 한층 두터운 의미를 담을 필요가 있다.

 

탈핵신문 2021년 12월(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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