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유생 집단상소에서 비롯된, 월성1호기, 주민투표 요구 ‘만인소’
경주시민들의 월성1호기 주민투표 요구 서명운동이 ‘만인소’로 결실을 맺었다. 경주지역 18개 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월성1호기 폐쇄 경주운동본부(준)’(이하, 운동본부)는 지난 5월 13일 시청 앞에 천막농성장을 꾸리고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서명운동을 시작한지 꼬박 2개월째인 7월 13일 1만 명을 돌파하여 최종 10,181명의 서명을 받았다.
이번 서명운동의 특징은 만인소 형태로 진행되는 데 있다. 만인소는 조선시대 유생들이 임금에게 올린 집단 상소에서 비롯된다. 우리 역사에서 최초의 만인소는 1792년(정조 16년) 1만 57명의 영남지역 유생이 사도세자의 신원(伸寃)을 연명한 상소였다. 운동본부에서 진행한 ‘월성1호기 주민투표 요구 경주시민 만인소’도 전통 방식을 따라 커다란 한지에 붓으로 서명을 받아 지장을 찍는 형태로 이뤄졌다. 당연히 일반 A4 서명용지에 비해 휴대성, 배포성이 매우 떨어졌고 시민들이 쉽게 접근하기도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른 시간에 1만 명이 달성된 이유를 운동본부는 “경주시민들의 월성1호기 폐쇄 염원이 매우 컸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운동본부에 따르면 “각종 여론조사에서 경주시민 75% 이상이 꾸준히 월성1호기 폐쇄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여론을 만인소로 모았다는 것이 운동본부의 설명이다. 경주지역 시민운동 역사에서 1만 서명은 10여 년 전 학교급식조례 제정운동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경주시민들과 연대단체 회원들의 ‘월성1호기 폐쇄’ 열정으로 만들어진 만인소!
운동본부는 시민들의 염원과 함께 연대단체 회원들의 열정을 만인소 성사의 배경으로 꼽았다. 몇몇 회원들의 미담을 소개하면 이렇다. 만인소 용지 한 장에 보통 100명에서 140명의 서명을 받을 수 있다. 경주환경운동연합 김윤근 공동의장은 작년에 척추 수술을 받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주변 지인들의 서명을 받아 만인소 1장을 완성했다. 구진영 회원은 자신의 사무실 앞에 작은 책상을 내어 놓고 틈틈이 서명을 받아 만인소 1장을 완성했다. 우선주 회원은 아이 셋을 키우는 까닭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이 번지면서 외부활동을 일체 중단했다. 그런데도 이웃의 서명을 받아 만인소 1장을 가져왔다. 김현정 회원은 카페에 서명대를 꾸려놓고 고객들에게 서명을 받아 1장을 완성했고<사진 참고>, 강선래, 김성대, 김숙희, 박경애, 서수미, 이광춘, 이문희, 이정기, 임대찬, 장현숙, 전순덕, 최성금 회원 등이 모두 직장 동료, 이웃의 서명을 받아 만인소를 채웠다고 한다.
또한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 주민은 양남면 주민 865명(7장)의 서명을 받았고, 경주여성노동자회는 만인소 3장을 완성하기 위해 일주일가량 서명 캠페인을 펼쳐 정확히 500명의 서명을 받았다. 민주노총 경주지부에서 조합원을 대상으로 10장을 완성했고, 대형마트 입점 반대운동으로 서명을 못 받고 있던 경주상인보호위원회도 이틀 동안 뛰어다니며, 시내 상인들 173명의 서명을 받아 막차에 동승했다. 무엇보다 열성 회원들의 캠페인 강행군이 26장의 만인소를 만들어냈다. 만인소는 이처럼 연대단체 회원의 땀방울로 만들어졌다.
10,181명 서명, 72장의 서명용지, 2주간의 배접작업으로 90미터 상소문 완성
운동본부는 만인소 운동의 가장 큰 성과를 패배주의를 털어내고 자신감을 회복한 데 있다고 했다. 6월 10일 월성1호기가 재가동되면서 지역의 많은 분들이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천막농성장을 계속 꾸리고 저녁마다 캠페인을 펼치고 마침내 7월 13일 1만명 서명이 달성되면서 연대단체 회원들이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고 한다.
10,181명의 서명이 담긴 72장의 서명용지는, 7월 14일부터 김윤근 공동의장의 지휘아래 본격적인 만인소 제작에 들어갔다. 한지 한 장 한 장에 풀을 먹이고 종이를 덧대는 배접작업<사진 참고>, 이를 건조하고 다시 이어 붙여서 길이 90미터에 이르는 상소문을 만드는 작업이 2주 정도 진행됐다. 매일 저녁 5~8명의 회원들이 모여 밤 11시가 넘도록 작업하여 만인소가 완성됐다. 보관함을 만들고 서예가로 명성을 떨치는 정수암 선생님을 찾아뵙고 보관함에 글씨를 받았다.
7월 29일 월성1호기 폐쇄 요구 ‘만인소’ 기자회견…9월 7일 청와대 직접전달, 상경투쟁
7월 29일 드디어 만인소를 세상에 공개하는 기자회견이 개최됐다<사진 참고>. 경주시청에서 제를 올리고 40여명의 회원이 만인소를 펼쳐들고 시청을 에워 샀다<사진 참고>. 비록 월성1호기는 재가동됐으나, 천명은 여전히 월성1호기 폐쇄에 있었다. 월성1호기 주민투표 요구 경주시민 ‘만인소(萬人疏)’ 운동이 이를 장엄하게 웅변했다.
운동본부는 상경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9월 7일 주민들과 함께 전세버스를 타고 상경하여 광화문 앞에서 만인소를 펼쳐들고 크게 소리칠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리고 청와대를 방문하여 대통령에게 만인소를 전달할 계획이다. 모든 핵발전소의 운명은 해당 지역 주민들의 손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상홍 통신원(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탈핵신문 2015년 9월호 (제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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